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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착하다’는 말
전부미 교수  |  webmaster@ysu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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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16.11.23  10: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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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변화는 사회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표가 된다. 2년 전, ‘착하다’의 쓰임 변화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착하다’는 원래 착한 사람, 착한 마음 등 사람의 심성을 표현하는 말인데, 2000년대 중반부터 착한 가게, 착한 가격 등과 같이, 사물 명사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로는, 사물 명사와의 쓰임 빈도가 폭증하고, 착한 드라마, 착한 연애, 착한 몸매 등 의외의 명사와 결합하는 조어현상도 크게 유행하였다.

사물 명사 앞에 쓰이는 ‘착한’은 어떤 의미이며, 이 뜻밖의 조합은 왜 2009년 이후 열풍이 불어 이제는 거의 정형화된 것일까?

사물을 수식할 때의 ‘착한’의 공통된 의미는, ‘이타적인(속성)’이다. 사적인 이익보다는 공익과 사회적 약자를 우선시하고(착한 소비, 착한 기업, 착한 분노), 관련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착한 드라마, 착한 연애), 가격 면에서 만족을 주며(착한 가격, 착한 학자금 대출), 우리 몸이나 환경에 이롭고(착한 유전자, 착한 뇌, 착한 미생물 EM), 위축감, 위화감이 아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착한 몸매) 등, 함께 쓰이는 명사에 따라 뜻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공통된 의미는 ‘이타성’이다.

흥미로운 것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착하다’가 그리 인기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치열하고 척박한 생활 속에서, 남을 위해 양보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착하다’는 심성은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심성으로 인식되었고, ‘착하다’는 단어는 ‘남에게 거절을 못하다, 만만하다’와 같은 부정적 의미로 해석 되었다. 부자가 될 수 있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가 살아있었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남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맺고 끊음이 명확한 자기중심적 인간 유형이 대중적으로 어필하여 ‘착한’ 심성 보다는 오히려 '나쁜'이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더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왜 ‘착한’ 이란 수식어가 2009년 이후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일까?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남 탓’이며 ‘남과 엮이면 손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 십년간 심화된 양극화와 불평등을 인식하고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는 생각에서 ‘남도 배려해야 사람다운 세상’이라고, 생각이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안녕들 하신지요?’ 라는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된 인사에 응답의 물결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타인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던 우리에게 ‘당신은 괜챦냐’는 한 젊은이의 인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더불어 상생하지 않으면 개개인의 개별 삶도 위태롭다는 인식이 이제 널리 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착하다’는 어휘의 이타적인 의미도 긍정적으로 다시 부각되어, 이제 사회의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상생과 나눔의 가치를 표현하는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심성을 나타내는 명사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긍정적 가치와 감정을 가져다주는 활동, 조직, 행사, 물건, 신체 부위 등 함께 쓰이는 명사의 범위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확장되어, 마케팅 작명에 있어서 ‘착한’을 붙이는 일대 열풍이 불었다.

우리가 지록위마, 혼용무도의 험한 세월을 겪는 동안, 바보와 동의어로 존재감 없는 사람을 나타내던 ‘착하다’는 말이 이제 ‘이타적이며, 공공적이며 개념과 의식이 있다’는 큰 존재감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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